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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란을 폭격하는데 왜 한국의 기름값과 환율이 흔들릴까?

미국과 이란이 싸운다.
미국은 이란의 항구와 발전시설, 군사기지를 폭격하고 이란은 중동의 미군기지와 선박을 공격한다.
한국은 전쟁 당사국도 아니다. 이란에 군대를 보낸 것도 아니고, 미국의 폭격기를 띄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전쟁이 격해졌다는 뉴스가 나오면 한국에서는 국제유가가 오르고, 원·달러 환율이 출렁인다. 며칠 뒤에는 주유소 가격표가 바뀌고, 물류비와 항공료까지 들썩인다.
도대체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석유만 사오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석유를 들여오기 위해 동시에 세 가지 비용을 지불한다.
원유 가격,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비용, 그리고 달러 가격이다.
전쟁이 터지면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비싸진다.
현재 미국은 이란에 연속적인 공습을 가하고 있다. 이란도 바레인·쿠웨이트 등 중동의 미군 관련 시설과 선박을 공격하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폭격 자체가 아니다.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좁은 바닷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에서 생산된 원유와 LNG 상당량이 이곳을 통과한다.
전쟁 전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석유제품 소비량의 약 5분의 1, 전 세계 해상 원유 거래량의 4분의 1 이상을 담당했다. LNG 역시 세계 거래량의 약 5분의 1이 이곳을 통과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쉽게 말하면 이곳은 바다가 아니다.
세계 최대의 에너지 톨게이트다.
이란이 선박을 통제하고 미국이 이란 항만을 봉쇄하면 유조선은 어느 쪽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부터 불확실해진다.
실제로 최근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이 크게 줄고, 일부 선박은 위치추적 장치를 끈 채 운항하거나 출항 자체를 미루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호르무즈 충돌 현황
배가 완전히 멈추지 않아도 가격은 오른다.
선박회사는 공격받을 위험을 계산한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올린다. 정유사는 혹시 원유를 구하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미리 물량을 확보한다.
시장은 실제 부족보다 부족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먼저 돈을 붙인다.
이것이 이른바 전쟁 위험 프리미엄이다.
한국이 사용하는 원유의 중동 의존도는 여전히 약 70% 수준이다.
2024년에는 국내 원유 수입의 71.5%가 중동산이었고, 2025년에도 70% 안팎의 구조가 이어졌다. 미국산 원유 수입을 크게 늘렸지만 중동 의존 구조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한국석유공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분석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중동이 위험하면 미국이나 브라질에서 사오면 되는 것 아닌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첫 번째는 거리다.
중동은 미국·중남미보다 한국과 가깝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중동산 원유가 다른 지역보다 배럴당 약 1.12달러의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정유설비다.
한국 정유공장은 오랫동안 중동산 중질·고유황 원유를 처리하는 구조로 발전했다. 원유는 어디서 가져오든 똑같은 검은 액체가 아니다.
산지마다 성분과 점도, 황 함량이 다르다. 갑자기 다른 종류의 원유를 들여오면 설비 효율과 정제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
결국 한국은 중동산 원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도 단기간에 거래처를 바꾸기 어렵다.
싸고 익숙한 공급망에 맞춰 공장을 지어놓은 대가다.
기름은 원화로 살 수 없다.
국제 원유 거래는 대부분 달러로 이뤄진다.
한국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하려면 먼저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한다. 유가가 오르면 같은 양의 원유를 들여오는 데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하다.
한국 전체로 보면 에너지 수입대금이 증가하고 무역수지 흑자가 줄어들 수 있다. 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 달러 가격인 원·달러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여기에 전쟁이 터지면 투자자들도 움직인다.
위험한 시기에는 원화 같은 통화보다 달러를 선호한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과 채권을 팔고 달러로 바꿔 나가면 원화 가치는 한 번 더 밀린다.
한국은행도 중동 전쟁 당시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와 외국인 자금 유출이 부각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올랐고, 미국·이란 간 종전 기대가 나타나자 환율이 다시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한국에는 이런 이중 문제가 생긴다.
원유 가격도 오르고, 원유를 살 때 필요한 달러 가격도 오른다.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전쟁 전 원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이고 환율이 1달러당 1,400원이라면 원유 한 배럴의 원화 가격은 다음과 같다.
80달러 × 1,400원 = 112,000원
전쟁 이후 원유 가격이 100달러로 오르고 환율도 1,500원으로 상승하면:
100달러 × 1,500원 = 150,000원
달러 기준 원유 가격은 25% 올랐지만, 한국이 실제 부담하는 원화 기준 가격은 11만2,000원에서 15만원으로 약 33.9% 증가한다.
(150,000원 ÷ 112,000원 - 1) × 100
= 약 33.9%
이것이 원유를 전량 수입하고 달러로 결제하는 국가가 받는 이중 충격이다.
물론 이 숫자가 곧바로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주유소 가격에는 정제비용, 정유사 마진, 유통비, 세금, 기존 재고가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국제유가와 환율이 올라도 실제 주유소 가격에는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반영된다.
하지만 방향은 피하기 어렵다.
원유와 환율이 동시에 오르면 충격은 주유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유 가격이 오르면 화물차 운송비가 오른다. 운송비가 오르면 식료품과 공산품 가격에 반영된다.
항공유가 오르면 항공권과 여행상품 가격이 상승한다.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 플라스틱·섬유·화학제품의 생산비가 늘어난다.
LNG 가격까지 오르면 전력과 도시가스 비용도 압박받는다.
결국 전달 경로는 이렇게 이어진다.
미국·이란 충돌
→ 호르무즈 해협 위험 증가
→ 원유·LNG·보험·운임 상승
→ 한국의 달러 결제액 증가
→ 원화 약세와 환율 상승
→ 정유·물류·항공·화학 생산비 증가
→ 주유소 가격과 생활물가 상승
폭탄은 중동의 시설을 부수지만, 경제 충격은 한국 가계의 소비 여력을 깎는다.
미국도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한다.
하지만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이고 캐나다에서도 대규모로 원유를 공급받는다. 2024년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 원유와 콘덴세이트는 미국 전체 소비의 약 2% 수준이었다.
반면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유와 LNG 대부분은 아시아로 향했다. 2024년 기준 호르무즈 원유·콘덴세이트의 84%, LNG의 83%가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했다. 중국·인도·일본·한국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구조다. 미국 에너지정보청
미국은 중동을 폭격하면서도 자국 원유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은 그 충격으로 비싸진 원유를, 비싸진 달러로 사와야 한다.
이 차이가 크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에는 호르무즈를 우회할 수 있는 송유관이 있다. 미국·브라질 등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더 들여올 수도 있다. 전략비축유 방출과 유류세 조정으로 국내 가격 상승을 늦출 수도 있다.
하지만 우회 송유관의 여유 용량만으로 호르무즈 해상 물량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미국산 원유를 더 사오더라도 운송 거리와 비용이 늘어난다.
즉, 공급 자체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내고 시간을 버는 것에 가깝다.

미국은 이란을 폭격하면서 자유로운 선박 통행과 안보를 말한다.
이란은 주권과 자국 해역의 통제권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통로의 가격 결정권을 둘러싼 싸움이다.
누가 지나갈 수 있는가.
누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얼마의 보험료와 운임을 지불해야 하는가.
그 비용은 결국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와 소비자에게 넘어온다.
한국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중동산 원유를 달러로 사야 한다. 그래서 미사일이 이란에 떨어질 때 원·달러 환율이 움직이고, 한국의 주유소 가격표도 뒤늦게 따라 움직인다.
전쟁의 비용은 폭탄을 떨어뜨린 나라가 아니라,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수입하는 나라가 더 많이 부담할 때가 있다.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의 통제권을 놓고 싸운다.
그리고 한국 소비자는 그 싸움의 통행료를 내고 있다.